청소중인 걸 모르고
Without knowing it was being cleaned...

솔은 커다란 개집으로 숨을까도 싶었다.

그곳이라면 세상을 개만큼의 약한 시력으로, 띄엄띄엄한 색깔로 봐도 될 것만 같아서. 솔을 스치는 관계와 관계로 짜여진 공간은 흐릿한 형상들로 빼곡하다—자잘한 이야기가 웅성거리고—여럿의 얼굴이 흘러내리고—들숨과 날숨이 겹겹이 쌓이는—그림자마저 모두 뭉개져 섞이는—이곳에는 명징함이 없다. 솔은 불확실성이라는 문법으로 세계를 읽는다. 그러니까 이 방을 부유하는 형상은 온통 자의적이자 틀린 맞춤법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. 그렇다고 그게 잘못은 아니지. 습관성 오독을 관계의 미학으로 두는 것은 일종의 얄궂은 전략이다. 오히려 상냥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? 품을 수 있는 관계가 많아지니 말이다. 다만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뾰족한 오차 값들이 여전히 따끔거릴 때가 있다.

그래서 솔은 당분간 다음의 팻말을 걸기로 한다 : 청소중

이는 정중한 부탁이자 조금은 소심한 경고다. 공간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니 양해해달라는 말과, 들어오면 미끄러질 수 있다는 주의의 말, 감췄던 것들을 끄집어내놓을 거라는 말이기도 하다.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문구가 가진 느슨함을 생각해 보자. 청소중은 보수중 혹은 공사중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시간성을 갖는다. 대단히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다. 또 한 가지는 위험성에 관한 것인데, 이미 청소중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어느정도 감수할 만하다. 발걸음을 좀 더 섬세하게 신경쓰면 될 일이다.

이 느슨한 속성을 이용해 솔의 세계를 기웃거려볼까 한다. 바닥에 놓인 세 개의 팻말에는 여러 감정 혹은 속엣말들이 경고의 표시처럼 붙어있다. 이는 겉으로 포착하기 힘든 내면의 언어가 있다는 것, 그것들은 말해지지 않고 암시로만 드러난다는 것을 떠올린다. 상대가 품고 있는 마음의 색깔과 형태는 그 변두리를 쫓아 어렴풋이 더듬어내는 수밖에 없다. 솔의 작업은 이와 같이 묵시적 형상을 매만지는 손길이다. 한 방울의 오차도 없이 타인의 모든 면면을 선명하게 볼 수도,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솔은 차라리 경계 흐리기의 기법을 택한다. 따라서 벽에 걸린 회화 속 인물들은 고정적이지 않다. 어슴푸레한 형상 위로는 많은 이들이 겹쳤다가 지나가기를 반복한다.

그러니 몇 가지의 관람 팁을 주자면 다음과 같다.
  1.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기—본인과 닮은 실루엣이 있지는 않은가?
  2. 살금살금 천천히 돌아보기—여기저기 놓여 있는 팻말과 조각을 주의해서 걷자.
  3. 끝까지 청소중인 걸 모른척하기—청소중일 때에야 많은 것들이 괄호 쳐지기 전을 볼 수 있으니!


글 지하운

청소중인 걸 모르고 Without knowing it was being cleaned
2022. 10 .19. – 10. 30.
RASA,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29길 2 3층 
작가 ㅣ 강솔
기획, 글 ㅣ 지하운
디자인 ㅣ 신동철
연출보조 ㅣ 이서영
도움 ㅣ 남민오